점수 : 10/10
인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혹은 철학적 고민을 즐긴다면 아주 추천하는 책이다.
인류가 아직 알아내지 못한 질문들과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인류의 단면을 훑어준다.
다만 꽤 두꺼운 책이라 지하철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좀 무거울 수 있다.
1. 인류의 4대 혁명
유발 하라리는 4가지 축으로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설명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이 그것인데, 이런 축들을 통해 어떻게 별 볼일 없는 동물이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생태계 최정점에서 지구를 통치하게 되었는지 하나 하나 파헤친다. 우리는 인지혁명을 통해 언어를 구사하며 협력할 수 있게 되었고,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농업혁명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숫자를 늘렸으며, 돈, 제국, 종교로 그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통합했다. 또한 과학혁명으로 전무후무한 세계를 구축했다. 이 모든 내용은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통찰력을 제공하고, 과연 미래의 사회는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상상하게 한다.
2. 떠오르는 질문들
사실 워낙에 두꺼운 책이고 중간 중간 쉬면서 읽어서 그런지 통합적으로 이 책을 이해하는데 한계를 느낀다. 다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은 따로 표시를 해놓았는데, 그런 부분들만 다시 읽어도 굉장히 흥미롭다.
이 책에 제시한 질문의 일부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큰 뇌를 가지게 되었는가? (모른다.)
2. 왜 호모 사피엔스는 가부장제를 채택하였는가? (모른다.)
3. 농업혁명이 종교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일어난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4.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종교는 차이가 있는가? (없다.)
5. 역사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가? (없다.)
이 책은 굉장히 정직해서, 모르는 것들은 모른다고 말한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들에 반박하는 내용도 굉장히 많다. 특히나, 내가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들에 다른 견해를 제시해주는 것이 많아서 지적인 자극이 되는 책이었다.
3. 인류학과 진화심리학
기존에 심리학을 전공하고 다양한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저자의 다양한 주장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주장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다른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책은 단순히 저자의 주장일 뿐이며 증거가 별로 없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인류학 연구에서 피하기 힘든 비판인 것 같다. 몇 백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양하고 모호한 증거들을 수집해서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사실 이것은 진화론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여러 가설을 제시하며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증거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진화론을 다루는 학문분야들이 신뢰성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진화론에 발판을 둔 다양한 학문분야들은 인류와 다른 생물종들에 대해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진화가 그 이유 때문에 일어났을까? 만약 다른 우연한 무엇이 있었다면? 혹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당시의 상황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화가 된 것이라면? 또한 우리는 아직도 수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생물이 어떤 식으로 진화가 되었다면 그 특징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는 가정때문이다. 하지만 그런식으로라면 동성애자의 존재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동성애자들은 번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으므로 동성애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진작 사라졌어야 했다. 이런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을 놓고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날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가정하는 결정론적인 오류가 생기기 쉽다.
또한, 진화는 이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며 일어난 돌연변이들 중 가장 생존에 유리했던 것이 남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맹점이 있는 눈을 갖게 되었고, 우리의 초점은 항상 흔들리게 되었으며, 우리의 뇌는 초점이 흔들린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시각적 정보를 쉴새없이 합치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눈을 설계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맹점이 없고 초점이 흔들리지 않는 눈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뜻 봐서는 그렇게 진화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류학과 진화심리학은 너무나 흥미로운 분야이다. 오히려 이런 수수께끼 같은 부분이 이 분야들을 더 신비롭게 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긴 궁금증 덕에 나의 무지를 느끼면서, 이 분야를 다룬 다른 저자의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심리학을 학부에서 전공하기는 했지만 진화심리학에 대한 깊이있는 공부는 하지 못했고, 그 외의 과학분야는 취미로 공부한 수준이기 때문에 아마 전공자들이 이 리뷰를 읽으면 반박할 내용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역사의 전개를 예측할 수 없다'는 유발 하라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같은 논리가 인류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모르지. 다른 책을 읽고는 이 글로 다시 돌아와 스스로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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